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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서 배출되는 무언가(변, 숨, 응시)인 작업은 손에서 도구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어떠한 상상이나 의도는 없다. 단순한 배출에서 오는 쾌감은 순간에 머무르며, 후에 내용을 더함으로 의미가 생성된다. 가장 원초적인 단계의 세포와 같은 요소들로 가득 채우는 화면은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해 이미지를 형성한다. 형상에 명명되는 기호들은 내용과 표면의 합일 보다는 부유하는 상태로 머무른다.

  주된 표현 기법으로 반복과 대칭은 기념비적 형상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반복은 무의식상태에서 의식화하는 과정에 접근하는 것으로 정신성의 반복을 의미한다. 내면의식을 가시화하는 일부 통제된 형식으로 대칭은 조형원리로는 제약을 받지만 의미적 측면에서 무의식과 관련해 신성함, 견고함, 상징성을 드러낸다. 화면을 구성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가장 특징적인 규칙인 반복과 대칭은,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본인만의 상징화된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주요 색감인 빨강과 파랑, 혼합색인 초록과 보라색은 정서적 반응과 감정적 환기를 유도한다. 빨강은 생성하는 색으로 생명을 의미하며 차가운 색조로 기운다. 물과 하늘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파랑은 무한한 확장성과 침잠하는 심상으로 내면의 깊이와 정신성을 상징한다.

  [원형(原型:Archetypus)시리즈]가 원형적 표상으로 내면과 정신성의 집중이라면, [마음의 지도 시리즈(Map of the Soul)]는 원형이 분해, 재조합, 재창조된 세계로 의식과 무의식 전부를 포함하는 영혼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의식으로 알지 못하는 현실 바깥, 혹은 내면 안에 존재하는 지각의 표상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시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표상들을 의식화하는 과정에서 재창조된 세계는, 본능과 무의식에 관한 것으로, 근원적인 내면의식을 자기실현의 과정으로 의식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면의 원초적 풍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작업이미지와 연관된다.

 

  [분리배출 시리즈]는 2012년부터 지속해온 ‘원형’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강박, 반복, 의식화, 해체의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캔버스를 짜고 화면을 구성하고 이미지를 배치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이후 버려지는 것 속에서 분리된 캔버스 천 조각들은 또 다른 배출로 이어진다. 손끝에서 나온 당연한 것들(완성된 캔버스작업)을 자르는 행위는 원초적 측면보다는 제3자적 시점으로 나와(본인 or 드러나다) 분리된다. 가장 원초적인 드로잉을 캔버스 화면에 옮기고 내용을 붙여 완성을 명하는 일련의 구조 속에서 나온 면들은 한 번 더 틀을 만들어 본인과 완전히 분리된 물질적 측면의 조각이 된다.

 

  작가 본인에게 작업은 배출과 같다. 다양한 상황과 장소에서 나온 무수한 드로잉들은 캔버스작업을 통해 배출되고 제목과 함께 소진된다. 소진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폐기하는 작품을 조각조각 잘라 보관한다. 많은 작업과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는 폐기된 작업의 조각들은 보관의 과정(소화)을 지나 다시 새로운 평면에 모아져 또 다른 배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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